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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era

라이카의 부활을 알린 스테디셀러 M6

라이카사가 야심 차게 준비한 M5는 최초로 노출계가 내장된 M 시리즈였으나 외관에 있어 기존 시리즈의 계보를 벗어나 파격적인 변신(크기, 무게)에 라이카 유저들로 부터 외면을 당했다.

1970, 80년대는 SLR 카메라의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을 했고, 일본 카메라 메이커들이 라이카를 위협할 만큼 급성장한 시기였기에 라이카의 고민은 점점 깊어졌을 것이다.

심열을 기울인 역작이 진열대에서 고객들의 손길을 외면받고, 창고에 재고가 쌓여 간다는 것은 기존의 명성이 하루아침에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가슴 철렁한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급기 하는 RF 생산을 더는 하지 않고 SLR 개발에 전념하겠다는 말까지 나왔지만 역시나 그 시장에서도 일본의 카메라들에 참패를 당하고 회사의 존립조차도 힘겨워졌을 즈음 M의 부활을 외쳤던 장인들에 의해서 다시 고전으로의 회귀를 통해서 M4-2, M4-P가 독일이 아닌 카나다에서 생산된다. 라이카의 재정 압박은 독일의 값비싼 인건비도 한몫 했기 때문일 것이다.
M4-2, M4-P는 기존의 M4에서 셀프타이머를 제외하고 노출계가 없이 출시되었다. 이것으로 라이카는 재정난에서 한숨은 돌렸지만, 위기상황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기업의 흥망성쇠 속에서 전자 기술의 발달로 노출계의 소형화가 가능해졌고, 라이카는 클래식 M 바디 사이즈를 유지하면서 노출계를 내장한 M6를 1984년에 선보이게 된다.

이로써 라이카의 심각했던 재정 압박에서 벗어나 다시금 봄을 맞이하게 된다.
 
관성에서 벗어난 행보는 반세기 이상 쌓아온 명성을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듯하다. 분명 당시에도 M5에 대한 새로운 변화를 반기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지금도 필자의 눈엔 M5는 다른 별에서 온 라이카의 먼 친척 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현재에 와서는 M5에 대해서 재평가되고 있다는 말들이 흘러나오지만, 그것은 대부분이 수집가들의 이야기 아닌가 싶다.

어느 날 샵에서 마주친 M5는 동양인의 손에는 여전히 크고, 라이카의 심플하고 세련된 고전적 외관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M5를 써본 적 없는 필자로서 이 이상 논하는 것은 물의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라이카의 기업 정신 만큼은 높이 사고 싶다. 물론 지금은 대주주로 에르메스라는 거대 명품 회사가 버티고 있지만, 대다수의 회사들이 고객으로부터 카운터 펀치를 맞게 되면, 스스로 회생 불가 판결을 내리고 문 닫기 일수인데, 그 시련을 견디어 내고, 흔들림 없이 연구 개발에 힘쓴 장인들과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 동분서주한 경영진들이 있었기에 그 열정이 하나 되어 라이카는 M6이라는 제품을 다시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그 결과 돌아섰던 고객들은 라이카의 부활에 환호했다. 
라이카사는 100년(2015년 라이카 창사 100주년)을 넘어 오늘날까지 기업의 정신과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경의를 표한다.


M6은 1984년 7월 출시 이후 M6 TTL이 단종되는 1999년 1월까지 약 15년 가까이 사랑받아온 제품이다 보니 동일한 타이틀인 M6를 달고 있지만 M3만큼이니 시기별(시리얼) 특징 및 변화가 있고, 선호도 측면에서 유저 마다 다르다고 할 수 있다.

M6는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첫 번째, M6 클래식 - 상판 하단에 ERNST LEITZ WETZLAR GMBH 라인 각인과 라이카의 심볼 빨간 딱지의 글자가 Leica가 아닌 Leitz라고 되어 있음
두 번째, M6 non-TTL - 상판의 각인이 없어지고, 노출계 점등 스타일이 변경 되었고, 빨간 딱지의 글자가 Leica로 변경
세 번째,  M6 TTL - 플래시 TTL 기능이 추가되었고, TTL 기판의 추가로 높이가 2mm 높아졌다. 셔터 스피드 다이얼이 커졌으며 돌리는 방향이 기존의 것과 반대방향이다.
이외에도 파인더 배율(0.85, 0.72, 0.58)에 따라 분류하기도 한다.

M6는 28, 35, 50, 75, 90, 135mm 6개의 프레임을 지원하고, 뷰파인더 내부를 들여다보면 36/135, 50/75, 28,90의 프레임이 한 쌍씩 동시에 나타난다.
50/75의 경우에는 처음 사용할 때 헷갈릴 수도 있겠지만, 몇 번 사용해보면 금방 적응할 수 있다.

M6의 프리섹렉터(Frame Preselector) 레버는 3단계로 조절이 된다.
렌즈에서 가장 멀어지는 방향으로 밑면 35, 135mm 프레임을 보여주고, 가운데에 위치시키면 50, 75mm 프레임을 마지막으로 렌즈 쪽으로 밀면 28, 90mm 프레임을 보여준다.
M은 자동 프레임 인식 기능이 내장되어 있어, 해당 렌즈를 마운트 시키면 자동으로 뷰파인더 내부에 프레임을 보여주고, 프리섹렉터 레버가 돌아가 고정된다.


노출 지시등의 판독
노출 지시등은 좌우 화살표만으로 지시하고, 좌우 화살표 모두에 불이 들어오면 적정 노출을 의미하며 셔터를 누르면 된다.
사진을 반드시 기기의 지시대로 적정 노출로 촬영할 필요는 없다. 네거티브 필름은 관용도가 좋으므로 한스탭 정도는 충분히 커버를 하므로 적정 노출로 찍은 사진을 현상하여 스캔한 뒤 잘 분석해 보고,
아! 이런 상황에서는 한 스탭 언더로 이럴 경우는 한 스텝 오버로 촬영해 보는 것도 또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부분이므로 100% 노출계에만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감각을 익혀나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M6에서 지원하는 노출계는 신뢰할 수 있을 만큼 정확한데, 강한 햇빛에서는 2스탭 정도의 차이를 보이므로 참고하기 바란다.

M 노출계의 측광 영역의 이해(Exposure metering area)
M의 경우 노출 측광 방식은 선막에 그려져 있는 흰색 원에 반사되는 빛을 100% 평균한다. 즉 중앙부 측광이다.
스팟도 아니며, 그렇다고 중앙부 중점 측광도 아니므로 주의해야 하며, 익숙해지는 데는 조금의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일단 한번 익숙해지면 매우 편리한 시스템임을 알 수 있다. 원은 필름 전체 면적의 중앙부 23% 원에 해당한다.

M6에는 내적 외적으로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 존재한다.
내적으로는 흔히들 화이트 아웃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원래 화이트 아웃이란 말은 극지방 내지는 에베레스트 같은 고산에서 눈보라가 심해 온통 하얀색으로 앞을 전혀 분간할 수 없는 시계 0 상태를 의미한다. 그럼 M6에서 왜 이러한 표현을 쓰는 것일까?

특정한 각도 또는 역광 상태에서 초점을 조절할 때 뷰 파인더의 이중상 합치 부분이 하얗게 보여 초점을 제대로 맞출 수 없는 상황이 빈번히 일어난다.

외적으로는 상판과 하판에 사용된 소재가 기존의 황동이 아닌 아연 합금을 사용하여 버블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것이 손의 땀 등에서 발생하는 염분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아연과 크롬의 화학적 반응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아연과 크롬이 화학적인 반응을 일으키게 되면 아연의 물리구조가 변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버블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M6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한정판에 대한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라이카에 대한 정보를 열심히 찾아 헤맬 때 한 분의 블로그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M6에 대한 한정판이 무려 27개나 된다는 것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M6은 TTL을 포함하여 총 15년 정도가 생산되었는데 1년에 1.8개의 기념 바디를 만든 샘이다. 이 정도면 리미티드라는 표현은 무색하지 않나 싶다.
콘탁스 S2 바디의 경우 60주년 기념바디가 있는데, 한국에서는 기념바디가 아닌 것이 오히려 기념바디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독 한국 시장에는 콘탁스 S2 60주년 기념바디가 많다.

좀 아이러닉 하지 않는가. 라이카의 경우 단순히 카메라와 렌즈를 사는 것이 아니라, 라이카의 역사와 관련된 문화도 함께 사는 것이라는 말에 지금까지 공감하고 비싼 돈을 지불해 왔다.
당시의 언리미트한 행태는 한정판의 의미와 기념, 가치를 상업적으로만 포장한 달갑지 않은 사례였으며, 라이카의 역사, 전통, 문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행보였다고 본다.


공교롭게도 필자는 2대의 M6 한정판이 있다. 하나는 M6 단종 이후에 2000년을 기념하여 만든 밀레니엄 블랙페인트이고 또 하나는 LEICA Partner-Aktion Deutschland 1996인데, 밀레니엄 블랙페인트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하는 것으로 하고 LEICA Partner-Aktion Deutschland 1996에 대한 생각을 전하도록 한다.

샵에서 처음 이 카메라를 보았을 때 상판의 독일 지도가 상당히 디테일하게 그려졌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고, 작동 상태가 기존에 써봤던 2대의 M6에 비해서 상당히 매끄러웠다.

외관 또한 1996년 생산된 바디치고는 큰 상처도 없고, M6 특유의 아연 재질의 빈티지함이 느껴지는 히끗히끗함이 맘에 들어, 같은 기종의 M보다 한정판이라는 프리미엄 때문에 30% 정도의 웃돈을 주고 구입하게 되었다.
빈번히 나타나는 화이트 아웃 현상만 빼면 실사용기로서 사용하기 참 좋은 카메라다.

한데 상판에 새겨진 독일지도와 LEICA Partner-Aktion Deutschland 1996 글이 너무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봤는데, 확실한 답을 얻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한 일본 사이트에 아래와 같은 글이 소개되어 있었다.

베를린 장벽이 없는 통일된 독일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독일의 16주가 각각의 경계까지 세세하게 그려져 있고, 실제 지도와 비교해 봤는데 꽤 디테일하고 정확하다.
그런데, 이 M6은 기념 모델로 분명하게 정보가 없는, 조금 신비적인 모델이다.
Aktion는 독일어 표기이므로 영어의 Action과 같다.
즉, "라이카 파트너 액션 도이츠랜드 1996"
동서독의 통합을 의미하는 것은 틀림없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고 그리고 7년.
1996년이란 해에 어떤 항목이 판연히 다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Partner-Aktion"모델은 1996년에 M6이 500대, 라이카의 일안 리플렉스 R7 500대 생산되었다.
그러나 특별한 일련번호가 부여되지 않았고, 본체의 액세서리 슈에 보통 222/500 이런 식의 제한된 각인도 없다.
일설에 의하면, 라이카 사내 또는 유통업체에 판매되거나 고객을 위한 견본 내지는 상담 등에 활용된 것이 아닌지 추측해 본다.

위의 해석은 구글 번역기를 통해서 해석한 부분이라 한계가 있다고 본다.
번역된 내용에서 유추해 보면 라이카 파트너 액션 도이츠랜드 1996은 어디에도 정보가 없는 신비한 모델이 아닌 모호한 모델이며, 통일 독일의 모습을 경계까지 섬세하게 그렸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지만 1989년 붕괴한 베를린 장벽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1996년과 500대 한정판이면서도 악세서리 슈에 일련번호를 넣지 않은 점은 상당히 성의 없어 보이며 한정판이란 말을 무색하게 한다.
정말 일각에서 이야기하듯 유통업체에 판매되거나 고객을 위한 견본 내지는 상담 등에 활용하라고 라이카사가 제공해준 것을 기념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일 년의 행태가 기술 발전을 뒤로하고 수집가들의 기호를 맞추기 위한 염치없는 단면일 수도 있지만, 판단은 글을 읽는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M6은 모던 바디의 서막을 알리는 동시에 기계적 바디의 마지막을 알린 시리즈로 기억될 것이고, 무엇보다 재정난에서 허덕이던 라이카사의 부활을 알린 1등 공신이라 해도 무방한 이 바디는 지금도 세계의 많은 라이카 유저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세대를 이어갈 만큼 회자되는 스테디셀러로 남을 것이다.


Note
배터리 교환
대략 M의 노출계는 지속해서노출계를 사용할 경우 한 번의 새 배터리를 넣어 8시간 연속 작동할 수 있다고 한다.
배터리가 다 소모되어 갈 경우에는 붉은색 노출 지시등(LED)가 흐려지거나 깜빡인다. 혹은 노출계 옆에 배터리 아이콘이 뜬다(MP의 경우)
정상적인 작동을 위해서는 교환 시에 모든 배터리를 동시에 새것으로 교환해야 한다. 오랫동안 바디를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배터리 표면 부식에 의한 고장의 위험성이 있으므로 배터리를 제거하여 보관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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